인식론이 알려주는 일상 속 진실 찾기.
며칠 전, 집 근처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커피 한 잔을 시켰습니다. 평소 마시던 아메리카노였고, 익숙한 바리스타가 만들어준 익숙한 맛일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한 모금 마시자마자 입이 얼얼해졌습니다. 순간 생각했어요.
"이거… 설탕 들어간 거 아냐?"바로 바리스타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죠.
“어? 저희 아메리카노에 설탕 안 넣어요. 그냥 원두가 좀 단맛이 나서 그렇게 느끼셨나 봐요.”그날 저녁, 이 일을 떠올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분명히 단맛을 느꼈는데, 그것은 사실일까? 진짜 단맛이 난 걸까? 아니면 내 혀가 착각한 걸까?"
우리는 언제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고 할 때, 그것은 단순히 믿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고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렇게 말했죠. “지식은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다.”(Justified True Belief). 이를 쉽게 풀자면, '진짜로 그런 것이고, 내가 그렇게 믿고 있으며, 그 믿음에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지식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제가 마신 커피의 예로 돌아가 볼까요?
- 참인가요? → 설탕이 실제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바리스타가 말했습니다.
- 나는 믿었나요? → 네, 마셨을 때 단맛이 났다고 믿었어요.
- 정당화되었나요? → 제 입맛이라는 ‘개인적 감각’이 근거였지만, 객관적이지는 않았죠.
결국 제가 느낀 건 ‘믿음’은 있었지만, ‘지식’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일상 속 진실 찾기, 그 어려움
이처럼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뉴스 기사, SNS 피드, 누군가의 말 한마디, 맛집 후기, 반려견이 짖는 이유까지. 그런데 과연 그 모든 정보가 ‘진짜’일까요? 예를 들어볼게요. 아침에 남편이 “밖에 비 온대”라고 말했을 때, 저는 우산을 챙겼습니다. 그런데 막상 밖에 나가보니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더라고요.
그 순간 제 머릿속은 이렇게 작동합니다.
- 남편이 그렇게 말했으니 믿었고,
- 그 믿음에 나름 이유가 있었고,
-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어요.
지식이 아니라, 잘못된 믿음이었던 겁니다. 인식론은 이럴 때 물어봐요.
“당신은 왜 그 말을 믿었나요?”
“그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나요?”
“그것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있었나요?”
우리의 ‘앎’은 감정, 관계, 경험, 편견에 따라 쉽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인식론은 단지 학문적인 개념이 아니라, 삶의 태도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인식론이 주는 태도 – 의심, 탐색, 그리고 겸손
철학자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사고를 시작했어요. "나는 지금 커피를 마시고 있다고 믿지만, 이게 꿈일 수도 있다." 이렇게 극단적인 회의 속에서도,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처럼 인식론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줍니다. 남이 말한 것을 무조건 믿기보다는,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따져보고, 내가 아는 것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를 갖게 하죠.
단순히 커피가 단맛이 났는지 아닌지를 넘어서,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하게 됩니다.
작은 의심이 더 깊은 앎으로
그날 카페에서 있었던 일은 그저 소소한 해프닝이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안다는 것’의 복잡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감각은 종종 속이고, 믿음은 흔들리며, 진실은 생각보다 멀리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이 질문하고, 더 깊이 탐색해야 하겠지요. 인식론은 철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가 쓰는 우산 하나, 마시는 커피 한 잔 속에도 깃들어 있는 삶의 철학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믿음’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셨나요?
그 믿음, 혹시 다시 생각해볼 여지는 없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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