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종종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을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시험지에 등장하던 철학자, ‘무지의 지’를 말하던 인물, 혹은 독배를 마신 슬픈 사상가로만 기억하곤 하죠.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단지 고대 그리스에 머물던 학자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생각하는 인간’의 상징으로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길거리 철학자, 사람을 붙잡고 묻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활동했던 철학자로, 플라톤과 크세노폰 같은 제자들을 통해 그 사상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쓴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철학자라고 하면 웅장한 저작을 남겼을 것 같지만, 그는 오히려 말과 질문으로 철학을 실천했던 인물이에요.
그는 시장이나 광장, 심지어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의란 무엇입니까?”
“당신이 말하는 용기, 그게 진짜 용기일까요?”
“행복하게 산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상대방을 깊은 자기 성찰로 이끌기 위한 도구였어요. 때로는 불쾌감을 줄 정도로 집요했고, 그래서 ‘아테네의 등에’라고 불리기도 했죠. 등에? 네, 말(馬)에게 자꾸 들러붙는 성가신 파리처럼, 사람들의 무지를 자극하고 깨우는 존재라는 의미였습니다.
아는 것이 없음을 아는 자
소크라테스가 유명해진 결정적인 계기는 ‘무지의 지혜’입니다. 델포이 신전의 신탁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자는 없다”라고 전해졌을 때, 그는 의아해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지혜롭다는 것일까?”
그는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진리에 가까웠던 겁니다. 반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죠. 이 깨달음은 철학사의 핵심이자, 오늘날 우리가 삶을 돌아보는 방법과도 연결됩니다. 내 생각, 내 믿음, 내가 옳다고 여긴 것들은 과연 근거가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의심해 보나요?
불편한 진실, 그리고 독배
하지만 이처럼 사람들의 생각을 뒤흔드는 소크라테스는 결국 아테네 당국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부정한다”는 죄목으로 그는 재판에 서게 되었죠. 법정에서도 그는 꿋꿋이 자기 철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내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며, 죽음조차 두렵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독배형. 그는 감옥에서 독미나리를 마시고 생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그 죽음은 단지 개인의 최후가 아니라, 철학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관여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행동이었죠. 철학이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답했을지 모릅니다. "바르게 살기 위해 묻는 것."
왜 지금, 다시 소크라테스인가?
오늘날 우리는 넘치는 정보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정작 ‘생각하는 법’은 잊고 살아갑니다.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 편견처럼 굳어진 믿음들에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입니다.
‘나 자신을 알라’는 문장은 고대의 경구로 끝나지 않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나를 의심하고, 나를 이해하며,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삶. 그것이 소크라테스식 철학이며, 우리가 오늘 다시 그를 불러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정보, 정말 ‘당신’의 생각인가요?”
소크라테스는 지금의 세상을 본다면 가장 먼저 ‘지식’에 대해 묻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매일 뉴스를 읽고, 영상을 보고, 누군가의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생각과 정보가 ‘내 것’이 되기까지, 우리는 스스로 충분히 질문하고 고민했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할지 몰라요.
“당신은 아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안다고 ‘믿는’ 것입니까?”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
요즘 시대는 말 그대로 '행복 산업'의 시대입니다.
심리학, 자기 계발서, 브이로그, 명상 앱, 여행 영상까지.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원하고,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조용히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할 겁니다.
“당신이 그토록 바라는 행복, 그것이 진짜로 원하는 삶인가요? 아니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인가요?”
“정의는 무엇입니까?”
소크라테스는 고대 아테네의 광장에서 ‘정의’에 대해 토론을 즐겼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공정함’과 ‘정의’를 말하죠.
선거, 법, 사회적 이슈에서 늘 누군가는 ‘옳음’을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름’을 지적합니다.
그는 그때처럼 물을 것입니다.
“정의란 단지 힘 있는 자가 정한 기준이 아닐까요?”
“당신이 믿는 정의는 어디서 왔습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은 소크라테스의 핵심입니다.
겉모습이 아닌, 사회적 역할도 아닌, 직업이나 학벌도 아닌
‘진짜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되물을지도 모르죠.
“당신이란 존재는, 외부의 평가로 정의되나요? 아니면 내면의 진실로 구성되나요?”
질문하는 삶은 불편하지만, 진짜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그의 질문은 불편합니다. 때로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죠.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시작점 아닐까요?
지금 당신에게 소크라테스가 다가와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질문을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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